아내의 빈자리

  아내를 떠나보낸 지 5개월이 되었다. 처음엔 억장이 무너지는 것 심정이었으나 세월이 약이라며 조금씩 서서히 운명에 적응해 가고 또 살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.“아내”에 대하여 16 년 전 동창회보에 아내의 투병 중인 7년 전 “아내의 자리”에 글을 쓴 후 이제 또다시 “아내의 빈자리”에 글을 쓰는 본인의 마음은 처참한 심경이기도 합니다.투병 중 아내의 자리는 집을 떠나 있지만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차 있었지만 영영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영원이 비어버린 아내의 빈자리는 어떻게 채워야 할지?

 아내는 참 아들을 좋아했는가 보다 나하고 같이 있다가 별일 아닌 것 가지고 말꼬리 잡다가 힘들어 기분이 우울해서 맥이 빠져 있다가도 아들의 전화라도 오면 대번에 생기 있는 목소리로 유쾌해지곤 했으니깐... 아들이 결혼을 한 후로도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당일 택배로 보내곤 하던 짝사랑을 쏟아 붓는 엄마였으니깐......아내가 승천한 후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라 -전번 설 때는 그래도 병실에서라도 서로 위로할 수 있었는데- 아내의 그리움 특히 같이 시장 보러 다니든 차례 준비 등 힘들어 하면서도 꼭 손잡고 함께 하였는데 이렇게 내 마음고생을 시키니 내가 아내에게 생전에 정성껏 대해주지 못함에 너무 크게 복수하는 것 같아서 원망도 해보고 울꺽 쏟아지는 눈물에 가슴앓이도 많았지만 오늘이 할아버지의 기일이라 더더욱 마음이 찹찹하다.

  이번 추석 차례 모신 후 집안 가족들이 모여 7대종부가 떠나갔으니 8대종부가 익숙하기 되기에 힘도 많이 들 터이고 하니 삼촌이 생전에 자기 아버지(나에게는 할아버지) 제사 원불교식으로 당신께서 모시면 어떨까 의논해 왔는데 전통을 무시하기도 그렇고 좀 더 심사숙고하여 일 년 후에나 결정하자고 하였다.오늘 학교에서 “천송정 세운뜻은” 한 번 더 읽으면서 7 년 전 아내의 투병시의 감정도 생각해 봤으며 왜 좀 더 신경 써서 보호하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2번이나 했는지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다.

 주위에서는 아직도 20년은 더 살터인데 빨리 잊고 마음의 각오를 새로 하라는 둥 말도 많지만 어디 또다시 아내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? 왜 아내의 개성 뚜렷함과 앞서가고 나서기 좋아하는 점을 장점으로 보지 않고 단점으로 보았는지 아내는 무엇 때문에 나에게 좀 매달리며 나를 믿고 감사하지 못했을까 하고 후회도 원망도 해본다.

 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서 “고마웠어요, 고마워요” 하는 말소리가 귓가에 쟁쟁한데 왜 아내는 평소 우리집에서 좀 일찍 그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이 그렇게 쑥스러웠을까 7년 전 병이 낫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들어주겠다던 내각오가 세월이 가고 아내가 나아질수록 왜 소흘하게 되었는지 연초에 병원으로 가기 전 이젠 침대에 와서 자라는 그 말도 영영 들어주지 못하고 아내를 왜 그렇게 보내야 했는지 정말 나 자신이 미워진다.

 추석 성묘를 하러 갔을 때 혼자 북천집에서 보내면서 생전에 힘 든다고 밤 줍지 말라는 그 목소리가 쟁쟁한데 첫날은 당신 산소 주위를 둘러보면서 밤을 주었지만 뒷날은 건너편 안산에 가서 도저히 밤을 주을 수가 없어서 선물할 필요량을 안남골 아재 산에 가서 한 푸대 사고 말았다오.   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 부산제수는 서울 딸집에 가게 되어 제사 참석이 안 된다고 하였고 울산숙모께서 나물, 탕국, 떡을 준비하여 온다고 하였는데 이럴 때 일수록 당신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그래도 서로 많이 믿었기 때문이겠죠?

  너무나 많은 빈자리 사는 것 같지 않은 삶 어떻게 해야 할 지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할 터인데 일전에 행복전도사 최윤희 여사의 죽음을 비웃기도 하였는데 남편과 동반 자살한 심정이 조금은 동정과 이해가 되는 것도 같소, 여보! 당신의 바람대로 이번 추석엔 술도 안 마셨으니 좀 잘 봐주시구려!

    2010 9월 28일 연구실에서 남의 편이